페미니즘 기획연재_ <2> 만져도 되는 몸은 없다 -성폭력, 권력관계, 성적 대상화

페미니즘 기획연재_ 
<2> 만져도 되는 몸은 없다 -성폭력, 권력관계, 성적 대상화

 

전 한 부장검사가 기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술에 취해 여기자들을 성추행한 일이 있었다. 언론노조는 항의 성명을 내걸었고 가해자인 최모 부장검사는 중징계를 받았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후 대한변호사협회 기관지에서 피해자의 처신을 비난하는 어조의 논평을 내 논란이 재점화된 것이다.
  이 사건은 가해자가 검사이고 피해자가 기자라는 특수성이 있을 뿐, 사건의 흐름은 매일 무수히 일어나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의 흐름과 다를 바가 없다. 주연은 상대적 약자인 피해자와 권력을 가진 가해자이다. 가해자는 술이나 밤늦게까지 함께 하게 되는 자리 등을 빌미로 피해자에게 성폭력을 가하고, ‘술’, ‘늦은 밤’ 등은 고스란히 그를 위한 면죄부가 된다. 이에 피해자는 육체적·정신적 피해를 입고도 ‘처신’, ‘행실’, 심지어는 그 날 입었던 옷차림까지 비난을 당해야만 한다.
  그러나 밤이 늦었다고 해도, 술에 만취했다고 해도, 피해자가 눈앞에 다 벗고 누워있었다고 해도 성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본능에 따른’ 것이 아니라 ‘폭력을 저지른’ 것이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고 해서 주먹을 휘두르면 상해 사건의 가해자가 된다. 성폭력 역시 성을 매개로 한 폭력일 뿐, 다른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럼에도 성폭력 사건은 다른 폭력 사건과는 다르게 ‘성욕’이라는 것을 방패삼아 여타 폭력과 다르게 취급되곤 한다. 심지어 성폭력은 ‘다소 폭력적으로 변형된 성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에서 좀 더 초점을 맞추어 보아야 할 것은 성욕이 아니라 권력욕이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는 항상 권력관계가 존재한다. 앞선 사건의 검사가 함께 술자리를 한 대상이 자신보다 어린 여기자가 아니라 자신보다 권력적 우위에 있는 선임 검사 혹은 판사였다면 아마 성폭력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에서 남성이 가해자이고 여성이 피해자인 것 역시 이러한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온 사회가 ‘남녀평등’을 주창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성적 대상이며 객체의 위치에 있다. 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TV만 틀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갓 미성년자를 벗어난 여성 아이돌들의 아슬아슬한 치마 길이와 섹시 댄스, 몇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꿀벅지’ 논란, 매일같이 스포츠 신문에 오르내리는 여성 연예인 노출 기사, 얼마 전 핫 트렌드로 떠올랐던 ‘베이글녀(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인 여자)’ 등등. 이처럼 TV를 비롯한 대중매체에서 생산되는 여성의 상은 대개 남성적 시선으로 대상화된 것이다. 때문에 이에 노출된 우리 역시 마찬가지 시선으로 여성을 받아들이게 되고, 여성의 몸은 마치 물건처럼 품평하고 허락 없이 만져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성별 권력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존재가 될 수 없고 때문에 성폭력 사건 역시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가해자 1인의 처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이러한 성별 권력을 해체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
  몇 년 전 한 국회의원이 여기자를 성추행하고는 ‘식당 아줌마인 줄 알았다’고 변명한 사건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 ‘식당 아줌마’는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만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자신의 것이다. 몸의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만져도 되는 몸은 없다. 동의되지 않은 성적 접촉(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은 폭력일 뿐이며, 그것은 어떤 핑계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다.

룩셈부르크 | luxembur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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